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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저자 : 이영환
발행일 : 2017-04-13
ISBN-13 : 9791187897095
ISBN-10 : 1187897094
판형 : 153*224mm
페이지수 : 464 쪽
판매가 : 25,000 원

더 나은 시장경제를 위하여

시장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시장경제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시장경제도 자연스럽게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시장경제의 역사는 길어야 300년 정도라 할 수 있다. 약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해 지구의 정복자로 군림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정말 짧은 기간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와 결합한 시장경제는 인류 역사상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를 달성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되었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보편적인 인간의 삶은 사실상 생존 수준에 정체되어 있었으며, 1만 5천 년 전 수렵·채집 시대에 비해 1인당 소득은 가까스로 두 배 정도 상승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인류는 산업혁명을 계기로 폭발적인 소득의 증가와 함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과학혁명과 기술발전을 바탕으로 인류는 놀라운 물질적 성취를 향유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는 이미 어느 정도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되어 있었으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고 인쇄술의 발달로 커뮤니케이션에 혁신이 일어남으로써 봉건 시스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말 전기와 전화의 발명, 그리고 석유의 발견과 내연기관의 발명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20세기 내내 세계경제를 견인하였다.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말 인터넷이 등장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에너지 기술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글로벌 경제시스템이 형성되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3차 산업혁명』이란 제목의 저서를 출간한 것이 2011년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물인터넷이 아직도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3차 산업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3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사라지고 갑자기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을 거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정도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웬만한 사람은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전문가들 대부분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모든 기기들과 사람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과 결합해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아가 나노기술, 로봇공학, 3D 프린팅, 그리고 자율주행자동차로 대변되는 전방위적 기술혁신으로 삶의 모든 면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간은 기존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초월해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증강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스마트하고 혁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기술혁신이 인간의 일자리를 원천적으로 소멸시킴으로써 소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정보기술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여러 분야에서 공통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의 특성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기술적 유토피아는 오직 소수의 특권 계층에게만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일반 대중은 더 이상 시장에서 소비의 주체로서 역할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장은 오직 소수 특권 계층만을 위한 곳으로 변질될 것이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기술적 봉건주의’라고 칭했다. 이것은 정보기술이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지극히 우울한 전망을 상징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혁신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단순히 일자리의 감소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술발전의 충격이 기후변화, 불평등의 악화, 금융자본의 과도한 지배, 인구절벽의 도래, 국제통화 질서의 불안정 등과 같이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작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과 결합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모든 부정적인 요인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반이 붕괴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 우려해야 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다. 개별적으로는 그다지 영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결합하면서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태풍으로 변한 것이 바로 퍼펙트 스톰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퍼펙트 스톰은 올 것인가?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이며 충격은 얼마나 클 것인가? 현재 이에 대해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향후 글로벌 차원에서 시장경제는 더 큰 불확실성과 변동성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까지 드러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경제 문제들의 원천인 기존의 세계관에서 새로운 세계관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과 경제 전반에 걸쳐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과거 우리가 시장에 대해 갖고 있던 자유, 성장, 상호 이익, 번영과 같은 좋은 이미지는 퇴색하고 자본주의와 결합되었던 불평등, 착취, 탐욕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만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시장경제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경제의 진화가 반드시 인류의 보편적인 행복에 기여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장경제로 인한 불행의 고착화를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 이성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더 나은 시장경제를 모색하는 작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텍스트에서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자유시장경제의 장점을 옹호해 왔지만 불평등의 악화, 금융자본의 횡포, 경쟁의 약화, 그리고 파괴적 기술혁신의 부작용 등으로 요약되는 현실의 경제 문제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것은 필자와 같이 말석에 있는 경제학자가 다루기에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심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와 같이 결심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서 두 가지 요인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시너지 효과가 향후 시장경제의 작동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기술적 유토피아를 낙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분야의 최전선에서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전문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들이 기술혁신 게임의 승자가 되어 누리게 될 부와 명예에 집착하는 한 이런 낙관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것은 일종의 확증 편향에 해당한다. 반대로 향후 기술혁신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부정적인 측면인 일자리 소멸과 글로벌 차원의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킨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온전한 경제시스템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 시장경제는 현재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더 나은 시장경제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의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주류 경제학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주류 경제학의 심각한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이 어떤 변명을 해도 설득력이 없다. 주류 경제학은 탄생 초기부터 도구적 합리성과 균형 개념을 바탕으로 이론적 정합성과 논리적 일관성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왔기 때문에 경제 현실을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는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류 경제학을 신봉해 온 경제학자들은 이제 이 명백한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경제학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대변되는 시대적 흐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인간은 분리된 가운데 오로지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협력과 공유 정신의 확산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나아가 무상으로 타인에게 선물을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여전히 탐욕에 함몰되어 지대추구에 집착하는 행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반된 행동을 설명하는 통합적인 이론 모형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주류 경제학은 더 이상 기존의 환원주의적이고 연역적인 방법론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과 행동에 대해 많은 경험적 자료를 축적해 온 다른 학문 분야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통합적인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주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 복잡계 이론, 진화론, 그리고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적절한 방식으로 기존의 이론 모형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인간관계의 동학, 인간과 시장의 상호작용, 그리고 시장의 진화 과정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반영하는 새로운 경제이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경제이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더 나은 시장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선결과제이기도 하다.
여러 학문 분야에서 성취한 연구 결과를 통합해 새로운 경제이론을 모색하는 것은 필자가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 나름대로 시장경제의 당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궁리해 온 바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속해 있는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시장경제의 제반 문제와 관련해 몇 차례 특강을 한 것이 이 책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필자는 지난해부터 의식의 전환과 이를 바탕으로 한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웹사이트인 ‘지식공유광장(www.iksa.kr)’을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 이 사이트를 오픈하도록 권유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동국대학교 화학과 김홍범 교수와 여인형 교수 두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사이트를 오픈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소중한 자료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노력을 통해 공유의 의미를 체득하고 새로운 문명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일조一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시도는 이 책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오랫동안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이와 같이 불완전한 책을 출간하고자 결심하기까지 적지 않게 고민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은 냉혹한 비판을 받는다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탈고를 하고 다시 읽어 보면서 몇 번이나 출간을 망설였지만 결국 출간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주류 경제학에 대한 ‘내부의 반성’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에서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용기를 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축적되면 언젠가는 주류 경제학을 대신하는 새로운 경제학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필자와의 오랜 인연으로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해 준 율곡출판사 박기남 사장님이 흔쾌히 수락해 주신 덕분에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묵묵히 필자의 책을 공들여 편집하고 교정을 봐주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해준 방조일 주간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은 2014년 동국대학교 연구년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밝히는 바이다. 귀중한 연구년을 활용해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학교 당국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17년 4월
남산 자락의 연구실에서
이영환

제1부 시장경제의 본질에 대하여
제1장 시장경제의 발전 과정에 대한 소론
제2장 시장경제의 대극성 이해하기

제2부 시장경제이론의 주요 쟁점들에 대하여
제3장 시장경제와 선택 문제
제4장 시장경제와 가격체계 문제
제5장 시장경제와 효율성·공평성 문제
제6장 시장경제와 인센티브 문제
제7장 시장경제와 성장·분배 문제 및 위험·정보 문제

제3부 더 나은 시장경제를 위하여
제8장 패러다임의 전환과 시장경제의 전망
제9장 더 나은 시장경제를 위한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