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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운동 -대립과 순응의 역사

저자 : 최진배
발행일 : 2021-03-10
ISBN-13 : 979-11-973270-5-6
판형 : 신국판
페이지수 : 396 쪽
판매가 : 27,000 원

들어가는 글

     

이 책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정체성 선언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영국에서 협동조합은 18세기 중순부터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제협동조합연맹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선언한 해는 1995년으로 당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저자는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협동조합이나 국제협동조합연맹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선언한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선언하면서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그리고 원칙을 발표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제시한 개념들은 오늘날 협동조합 연구자, 운동가, 그리고 실무자들이 개별 협동조합의 경영과 협동조합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적 틀이다. 그러면 정체성 선언 이전에 협동조합 연구자나 운동가들은 협동조합 운동이나 개별 협동조합의 경영 등을 분석할 개념이나 이론적 틀을 가지지 못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컨대 협동조합 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전환시켰다고 평가되는 오언은 누가 무엇을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협동조합 운동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점들을 명확히 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이 선언됐다는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가 크게 흔들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기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심각하게 제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이 정체성 선언이 이루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제기되었다고 주장한다. 돌이켜보면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공한 협동조합 모델로 평가되는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이 설립된 이후이다. 따라서 정체성 선언이 이루어진 배경이나 이유를 이해하려면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이 설립된 해인 1844년 전후의 협동조합업계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과 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은 2부로 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1부는 오언이 전개한 협동마을 운동에서 시작하여 19세기 말에 끝난다. 2부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협동조합이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서 시작한다. 당시 협동조합이 당면한 문제는 생존의 문제였다. 20세기 초중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동조합과 국제협동조합연맹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생존의 위기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기업을 닮아갔다는 점이 그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이 사실상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협동조합 연구자들과 운동가들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이러한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었는데, 1995년의 정체성 선언은 이를 상징한다.

대립순응1부를 특징짓는 주제어이며, 2부를 특징짓는 주제어는 경쟁차이이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1776국부론을 출판했다. 최초의 근대적인 경제학 저술로 평가되는 국부론은 노동가치론을 이론적 토대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정립한 오언(R. Owen)과 오언주의자들이 신봉한 이론도 노동가치론이었다. 1820년대 오언주의자들의 자극을 받으면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된 생산자협동조합 운동이 활기를 띠면서 협동조합 운동이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사회운동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자본가와 정부는 생산자협동조합 운동을 억압하고 탄압했다. 자본가와 정부의 억압과 탄압은 1834년에 절정에 달했다. (G. D. H. Cole)에 의하면 생산자협동조합 운동을 이끌던 전국노동조합대연맹은 1834년 지배계급, 그리고 공장주들의 소나기처럼 쏟아진 공격 아래에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1834년 말에는 재난에 가까운 종말을 맞이했다. 생산자협동조합도 노동조합 운동의 패배 과정에서 사멸했다.

당시의 생산자협동조합 운동을 주도한 것은 서로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던 생산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이었으며, 협동생산을 통해 협동마을을 건설하려는 그들의 연합한 힘은 생산자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10년 동안의 시도는 실패를 경험했으나, 1840년대에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도 노동조합이 선두에 섰으며, 구제주의자들도 노동구제를 위해 나섰다.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과 구제주의자들은 자본가들에 대항하기 위해 협동생산과 협동마을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의 시도도 좌절되었는데, 1830년대와 같은 활기도 없었다. 이번에도 지배계층과 정부의 억압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실패를 낳은 보다 중요한 요인은 협동조합들의 참여의지 부족이었다. 예컨대 생산자협동조합, 특히 규모가 큰 생산자협동조합 대부분은 1830년대 그들이 치렀던 큰 대가를 우려하여 노동조합의 계획을 방관했다.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설립되었다. 선구자들은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정부와 자본가들의 노골적인 적대감과 탄압 때문에 1830년대와 같은 방식으로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제약에 따르기로 했다.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생산자협동조합과의 협동생산을 포기했으며, 협동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선구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와 대결하는 대신 그것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 ‘순응하면서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생존에 성공했으며, 나아가 이후의 협동조합 운동을 선두에서 이끌 수 있었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 대신 자본주의 체제와의 공존을 자신들의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과 경쟁해야 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경쟁이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협동조합은 규모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제고해야 했다. 자본주의적 기업이 독점적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다국적기업으로 규모와 세력을 키워나가자 협동조합들도 자본주의적 기업의 성장 경로와 방식을 따라갔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커다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협동조합은 자신들의 특성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경쟁자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의에 대답해야 했다. 협동조합은 무엇인가?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과 다른가?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정체성 선언은 이러한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정체성 선언을 하면서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적 기업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이때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중시한 것은 협동조합의 가치이다. 물론 협동조합에 대해 정의하고,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원칙들도 보완하고 새롭게 했다. 그렇지만 국제협동조합연맹은 협동조합의 가치를 준수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할 때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과의 차이를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체성 선언을 한 지 25년 이상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존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기업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이 차이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협동조합은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해서도 안 된다.

경쟁은 협동조합, 특히 새롭게 설립되는 소규모 협동조합의 생존을 위협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미 사업성을 확고히 하고 자본주의적 기업과 대등한 경쟁력을 가진, 그리고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신을 확립한 (대규모) 협동조합도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사회적·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이를 목적으로 정부에 의해 설립되는 다수의 소규모 협동조합에게 경쟁은 매우 가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이 책은 이들에게 자급자족적인 공동체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 책의 목적은 협동조합 운동을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이는 저자의 능력을 크게 벗어난다. 이 책은 협동조합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둔다. 이와 함께 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동조합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책이 검토 대상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생산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운동을 사회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두 부문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운동의 주된 담당자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생산자협동조합이라는 명칭보다는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생산자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과 같이 주로 소생산자들이 만든 협동조합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설립되기 시작하던 초기 협동조합 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은 생산자협동조합뿐 아니라 소비자협동조합의 핵심 조합원이었으며, 그들이 조합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완화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렇게 볼 때 협동조합 운동을 서술할 경우 노동자협동조합이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이 책은 노동자협동조합 대신 생산자협동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원고를 고쳐 쓰는 퇴고(推敲)는 이 책에 꼭 필요한 말이다. 이 책은 오랜 연구 끝에 나오지 않았다. 어렴프시 내용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연구와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를 쓰면서 연구하고 또 연구하면서 책을 써야 했다. 원고를 고쳐 쓰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것도 여러 번. 이런 번거로운 일을 도와준 경성대학교 경제금융물류학부의 이재희 교수와 김명록 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재희 교수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내용을 보완하도록 제안했다. 김명록 교수는 이재희 교수가 제안한 내용을 나를 대신하여 써주었는데, 3장의 [보론]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명록 교수는 퇴고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책의 내용 일부를 고쳐주었으며,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주기도 했다. 물론 책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농협대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던 김지윤 사서는 이 책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으며, 도서관 자료의 이용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김지윤 사서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책을 마무리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권오혁 교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활용할 수 있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두 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율곡출판사 방조일 편집장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원고를 여러 번, 그리고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는데, 이런 번거로운 일을 기꺼운 마음으로 해주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쉽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원고가 안고 있던 적지 않은 오류도 고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딸 최은영, 사위 성하민, 그리고 외손자 성유준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저자의 삶을 활기차고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가족의 중심에서 공동체를 묵묵히 이끌고 있는 아내의 내조가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결코 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내 곁을 지켜주면서 건강을 추스르고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20213

저자 씀

1부 생산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

 1장 협동조합 생성, 발전, 그리고 성장의 여러 국면들

 2장 협동마을 운동

 3장 생산자협동조합 운동

 4장 소비자협동조합 운동 

 5장 대립하는 협동조합 운동의 이념과 목적

 

2부 새로운 협동조합 운동의 전개

 6장 대립, 갈등, 그리고 쌓여가는 문제들 

 7장 정체성 선언을 위한 노력들 

 8장 정체성 선언의 내용과 의미 

 9장 여전한 문제들, 그리고 다시 부상하는 논의들

 10장 협동조합 공동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