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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신 교수의 한국의 분배

저자 : 안국신
발행일 : 2021-11-15
ISBN-13 : 9791191812046
판형 : 신국판
페이지수 : 482 쪽
판매가 : 20,000 원

들어가는 글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분배의 불평등이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 분배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경제·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소득 분배는 흔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미국 다음으로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소득 분배 통계가 있는 20여 개 아시아 국가 중에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가장 나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더욱 최근에는 우리나라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전체로도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대통령이 언명하였다. 2019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획기적으로 늘려 분배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좋은 일자리를 늘리며, 모든 사람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충심으로 소득주도성장정책을 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이며,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을 제로로 만들어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으로 이끌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의욕적인 정책 실험의 결과는 참담하였다. 분배가 개선되지 않고,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좋은 일자리 증대 대신 고용의 정체와 비정규직의 증가, 유례없이 높은 청년 실업으로 나타났다.

위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제기한다. 우리나라의 분배가 그렇게 나쁜 것인가? 분배가 얼마나 문제이고 얼마나 불평등한가? 분배의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은 어차피 불평등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불평등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불평등해야 지나치게 불평등한 것인가? 불평등이 문제이고 평등이 답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분배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까지 개선해야 평등이라고 할 것인가? 도대체 평등한 분배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양극화의 실상은 어떠한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인가?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정부의 분배 정책이 왜 선한 의도와 달리 흔히 엉뚱한 결과를 낳는 것인가? 이런 의문과 궁금증을 차근차근 풀어보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본서를 집필하면서 견지한 보다 광범위한 문제의식과 핵심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분배와 분배의 정의는 중요한 문제다. 빈곤 문제도 열악한 분배와 섞여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보아 분배의 문제다. 일찍이 공자가 살던 때부터 백성은 가난한 것보다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민중의 힘이 분배의 불평등을 걱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회 저항이나 내란, 혁명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라는 옛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가난과 수탈이 있는 농경사회에서는 농민 봉기가 흔하게 일어났다. 새천년에 들어와서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분배가 정의롭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현실과 이런 현실에 눈 감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는 아니지만 소득 분배가 상당히 불평등한 나라이고 사회 갈등이 심한 나라이다. 빈곤율도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대통령 직속의 국민대통합위원회(2015)는 사회 갈등의 실태를 진단한 뒤 경제력에 따른 계층 간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갈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이 책은 이렇게 중요한 분배와 분배적 정의의 문제를 공정한 분배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논한다. 최근 학계 연구가 제시하는 것과 같이 공정한 분배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소한의 소득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나머지 잉여분은 공헌도에 따라 분배되며, 각자는 이루고 누린 것에 비례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상호주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다.

둘째, 공정한 분배 못지않게 경제 성장, 개인의 자유, 삶의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이것들을 조화롭게 달성하려는 종합적·복합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저성장 시대에 경제 면에서 성장과 고용을 분배와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여 성장 친화적 재분배와 고용 친화적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비경제적인 면에서는 문명사회의 과제이자 청년세대의 바람인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상식과 법치에 바탕을 둔 공정한 사회 만들기가 분배 개선과 양극화 완화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다. 나아가 전쟁·범죄·재난·감염병 등으로부터의 안전, 미세먼지와 공해가 심하지 않은 쾌적한 자연환경, 기후 변화에의 대응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다양한 차원의 많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일러준 것처럼 분배 문제를 과유불급의 중용과 조화의 관점에서 대승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정치권과 일반 국민이 분배를 포함한 경제 정책의 효과와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뜨거운 가슴 못지않게 서늘한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분배 정책은 여러 가지로 많다. 각 정책을 펴는 방법과 범위도 얼마든지 다양하다. 각 정책마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와 다른 정책과의 상호의존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 균형된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알아야 한다. 거시경제학에서 전통적으로 강조하는 경제안정화 정책도 분배 악화를 막는 필요조건 중 하나이다. 과도한 대외의존도를 줄이고 재정 절제와 금융 안정을 중시하여 경제위기를 막는 경제안정화 정책은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지 않는 유력한 정책이다. 거시적인 경제안정화 정책에 실패하여 일어난 1997년의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의 분배를 크게 악화시켰다. 복합적으로 얽힌 분배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에 입각하여 실효성 있는 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배를 개선하려는 선의의 정책이 분배와 성장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 쉽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집값 폭등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무시한 오만과 편견의 정책 실험 때문에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실험과 보편적 복지에 입각한 현금 살포는 분배를 개선하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이름으로 앞으로 계속 출현할 갖가지 포퓰리즘 정책의 서곡이다.

우리나라는 불평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 불평등을 해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양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특효약은 없다. 다양한 정책 배합을 통해 공정한 분배를 이루어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불평등의 완화와 불공정의 시정에 경제·사회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효율,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계의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20세기 사회주의경제의 실험이 실패하여 평등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 권리에 관한 한 자연스럽지만, 부와 권력을 평등화하고자 하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이 타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시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숲 전체를 조망하면서 개별 나무를 살피는 종합적이고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분배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썼다.

주류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필자의 논리가 보수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필자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것처럼 진정한 보수는 진보적이고, 양식 있는 진보는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주류 경제학으로 단련된 합리적 실용주의자라고 자임한다. 우리나라 분배와 불평등을 다룬 책들이 적지 않지만 필자가 아는 한 본서와 같은 문제의식과 접근 방법으로 쓴 책은 없었다. 한편으로 자부심과 의욕이 앞서 분배와 복지의 각론에 정통하지 못한 천학비재의 한계도 절감한다. 세부적인 내용과 주장에 잘못이 있으면 깨우쳐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 책은 경제학원론이나 경제학개론을 접한 사람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경제학을 접하지 않은 사람도 처음에 참을성을 가지고 이 책을 읽으면 분배와 경제학원론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각 장 말미에 본문과 연관된 토픽들을 읽을 거리로 실었다. 이 책은 20213월 현재 이용 가능한 2010년대의 통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단면도를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2020년과 그 후에는 2010년대와 양적·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보이기가 쉽다.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직전 출발선의 분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20년과 5년 후인 2025, 10년 후인 2030년의 단면도는 2010년대에 비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나중에 자료가 이용 가능해지는 대로 필자의 블로그(ksahn21c@naver.com)에 올려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 책의 발간을 흔쾌히 수락해 주신 율곡출판사 박기남 사장, 훌륭한 편집 솜씨를 보여 준 편집부 방조일 이사와 차은지 선생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분배 통계 자료를 확인해 준 KOTRA의 고희채 박사, OECD 국가의 주요 경제 통계 자료를 찾고 정리해 준 경총의 임영태 고용정책팀장, 컴퓨터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한림대 건강과뉴미디어연구센터의 안창현 연구교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를 이용하여 최상위 계층의 소득과 자산의 집중도를 계산해 준 중앙대 석사 과정의 윤용기 군에게 사의를 표한다. 이 책의 최초 독자를 자청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초고를 읽고 많은 건설적인 논평을 해 준 윤형숙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랑스러운 손녀 서윤을 비롯한 이 땅의 손녀·손자들이 공정한 사회, 좋은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며 우리나라를 그런 사회로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19

일산 우거에서

안국신

I부 분배의 길잡이

1장 분배 입문

2장 분배 이론은 어떻게 전개되어 왔나?

3장 우리나라 소득과 부의 수준

 

II부 우리나라의 분배

4장 우리나라의 계층별 소득 분배

5장 우리나라의 기능별 소득 분배

6장 우리나라의 부 분배

 

III부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분배 정책

7장 분배 정책 서설

8장 바람직한 분배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