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재역설: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
저자 | : 김지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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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 2022-11-04 |
ISBN-13 | : 9791191812381 |
판형 | : 신국판 |
페이지수 | : 298 쪽 |
판매가 | : 25,000 원 |
들어가는 글
어릴 적 살던 집은 평지와 산비탈의 경계에 있었다. 집 앞 국수가게에서는 면발이 가늘고 마른 국수와 방금 뽑아낸 면발이 굵고 축축한 우동을 팔았다. 저녁 무렵 신문지에 싸주는 굵은 우동을 사기 위해 그 가게 앞에는 언제나 긴 줄의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또한 그 시간대에 길거리 양쪽 좌판대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하루하루의 저녁거리를 이곳에서 장만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이 동네에 비가 오면 길거리는 변(똥)으로 넘쳐난다. 산비탈인 윗동네의 공중화장실이 넘쳐 평지인 아랫동네로 흘러내려 왔다. 일설에는 인력꾼이 푸는 (변)요금이 부담스러워 사람들이 비오는 날 밤을 택하여 몰래 퍼낸다는 소문도 있었다. 경사지에 나무기둥을 박아 그 위에 올린 집들이 많아 무너질까 위태롭기만 하였다.
그런데 조금 내려가면 평지인 아랫동네는 넓은 대지에 두꺼운 나무대문과 높은 담으로 둘러친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리가 박힌 담 위에는 철조망가시로 둘러쳐저 도선생들이 함부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다(요즘에는 첨단 경비시스템이 가동되지만). 놀러간 친구의 이층양옥집 안에는 잔디밭과 분수대,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고 긴 드레스를 입은 친구 어머니가 직접 구어 내온 과자(쿠키)는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었다. 서로가 대부분 못살았던 1960~1970년대 그 당시에도 소위 말하는 빈부격차가 있었던 셈이다.
어린 마음에 윗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 집들은 가난하고 못살까? 누구의 탓인가? 본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탓인가? 가난을 물려준 부모와 조상 탓인가? 아니면 사회와 국가 탓인가? 또한 전쟁이나 소요 사태,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가정의 붕괴에는 사회나 국가의 일부 탓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럴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법적·제도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보장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 있는 아랫동네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엄청난 노력과 열심으로 이루어낸 본인 덕분(탓)인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부모나 조상이 이루어놓은 재산(부)의 덕분도 있지 않을까? 혹은 사회나 국가의 제도나 정책의 변경 등으로 혜택을 입은 것은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상황이 그 사람만의 탓이 아니듯이 좋은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의 상황도 자신만의 능력 덕분(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나 집안의 잘됨이 그 능력 이상의 것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의 혜택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의해 생산요소가 산출물 생산에 기여한 만큼, 즉 한계생산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다(사실 이것도 누가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여에 대한 보상분이 시장가격과 기여분(량)만큼 곱하여져 결정되어 기여자(참여자)들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이 배분(임금, 이윤, 배당 등)은 사유재산으로 보존되는 것이며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장은 신뢰와 진실성, 투명성과 같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관에 의존해서도 작동한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가치가 곧 시장에서의 가격과 동일시되는 잘못된 상식에 지배받고 있다. 가치를 과소 평가한 채 가격만을 맹신하면 시장경제는 거대한 위기로 돌아와 인류를 덮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카니(2022)의 목소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따라서 시장은 사회적이어야 하며 선한 자본주의가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에서 소득분배를 언급하게 되면 그건 이미 경제학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만큼 경제논리로 분배를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장과 발전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처한 상황에서 어려움 없이 더불어 잘사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분배가 더욱 개선되고 분배가 개선될수록 성장이 견고해지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성장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성장 논쟁을 통하여 살펴보자. 경제성장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자리 확대는 소득 증대로 이어져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 증가는 기업의 상품수요로 이어지며 이에 따른 기업의 생산능력 증대를 위한 투자가 늘어나게 되고, 투자 증대는 또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러나 성장을 통한 소득수준의 지속적인 증가는 구성원 간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삶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으며 환경을 파괴하여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기도 한다. 성장만능주의는 가족관계를 파괴하고 기술진보에 의한 성장이 오히려 일자리를 구축하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긍정적인 현상들보다 부정적인 현상들이 더 크게 부각될 때 ‘성장의 역설(paradox of growth)’로 표현된다. 또한 성장을 추진하는 데 있어 성장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묶어서 ‘성장의 애로(difficulties in growth)’로 정의하는데, 이는 성장 역설의 또 다른 측면이다.
본 저서는 성장의 역설이나 성장의 애로 등 부정적인 현상을 뒤집기하는, 그래서 성장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성장의 재역설(Reversing the Paradox of Growth)’을 주장한다. 경제성장으로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분배 문제, 환경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는 성장의 선순환이 이루질 때 선진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미·중 무역 갈등과 자본 갈등, 러시아 봉쇄 등 공급망 파괴로 인한 곡물을 포함한 원자재 가격과 에너지 가격의 폭등으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기침체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현상에 미국발 금리인상이나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등이 더하여져서 한국 경제도 물가와 금리, 환율이 동시에 오르는 3고 현상을 맞고 있으며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존의 적극적인 정부지출을 통한 재정정책이나 통화량 공급 및 금리 조절을 통한 통화정책으로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확대재정정책을 실시하기에는 국가 부채와 개인 부채가 GDP 대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으며 물가인상을 저지하기 위한 금리인상이나 통화량 축소 등도 현 경기상황에서 어려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1980년대 미 레이건 행정부 때 민간 위주의 경기활성화를 위하여 개인이나 기업들에 개인소득세(재산세)나 법인세를 감면하여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개인은 소비를 진작하는 공급 중시(측면)의 경제학이 실시되었다. 대표적인 래퍼곡선 가설을 통하여 법인세 감면은 기업들에 조세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고용창출과 경기활성화로 이어져 조세수입이 오히려 증가한다는 역U자 가설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경제는 회복되었지만 2008년의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소득분배는 악화되고 분배의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의 결과는 유럽 국가들에서도 동일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본 저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정책대안으로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경제학)’을 제시한다. 이 용어는 학술적인 용어가 아님을 밝힌다. 케인즈학파나 통화주의의 정책처방인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총괄하여 ‘수요 측면의 경제학’으로 지칭한다면 그 외 나머지 부문의 정책들을 총괄하여 ‘신공급 측면의 경제학’으로 부른다. 기존 공급 중시(측면)의 경제학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확장된 개념이다.
슘페테리안의 기술혁신, 민간기업 활동에 관련되는 기업규제와 완화, 기업의 (수도권)입지조건, 환경과 지배구조 관련 ESG와 탄소중립 전략, 국민들에 관련된 의식개혁,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 및 선진제도 개혁까지 공급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또한 성장의 동력이 기술혁신과 창조적 파괴, 기업가정신에 있다는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주장하는 슘페터가 결국에는 사회주의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는 자본주의의 실패론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자본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공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발전하리라는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 등도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경제학)’에서 다루게 된다.
따라서 본 저서에서 제시하는 신공급 측면의 경제학은 이러한 기존의 공급 중시 경제학이나 신고전학파종합의 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 경제위기 극복에 있어 수요 측면의 경제학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공급 측면의 성장정책을 우선적으로 실시하며 정책보완 측면에서 수요 측면의 성장론을 고려하는 정책혼합(policy mix)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은 성장동력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통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수준을 향상시키며, 소득분배를 개선함과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본 저서에서는 경제성장에 영향을 줄 수요 측면의 기준금리나 통화량 변동, 그리고 노동 관련 주제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 이 주제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정책제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저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성장에 대한 논쟁을 성장의 선순환, 성장의 역설, 성장의 애로,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로 나누어 성장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수준으로 서술한다. 2장에서는 성장과 발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성장론의 기본적인 개념들, 정형화된 사실이나 균제상태, 신고전파 모형의 강건성, 노동부가적 기술진보 등을 정리하여 이해도를 높인다.
3장에서는 본격적인 성장론을 다루기 전에 거시경제학의 흐름과 성장이론의 흐름, 그리고 기존의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의 경제학을 살펴보고 최근의 현대 공급 측면의 경제학을 소개한다. 4장에서는 신고전파 모형인 외생적 성장 모형에서 주장하는 소득수렴성과 내생적 모형에서 주장하는 발산론의 기본적인 이론을 알아보고 수렴성의 근거와 방법론,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의 수렴성 실증분석 결과들을 살펴본다. 5장에서는 펜 월드 테이블(PWT) 자료를 가지고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성장동력을 분석한다.
6장에서는 성장의 재역설을 주장하는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에 대한 핵심 내용을 다룬다. 크게 1절 성장의 역설에 대한 이해와 2절 공급 측면의 혁신성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1절에서는 생산성 하락의 해석, 고용 없는 성장의 이해, 기술진보에 따른 노동소득분배율 변화, 피케티 주장에 대한 해석, 소득불평등 완화와 확대 요인, 선진국으로의 소득수렴 여부, 저출산의 이해, 고령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이해, 친환경 성장과 환경, 사회 및 지배 구조, 그리고 기술혁신과 환경오염 감소 등을 살펴본다. 2절에서는 실물자본 축적이 기술혁신으로 연결되고, 기술혁신의 양적 다양성, 기술혁신의 창조적 파괴, 기술혁신의 확산으로 기술선도국으로 가기, 모방에서 혁신강화 전략으로, 발전 단계에 따른 성장동력 변화, 혁신생산에서의 인적자본, 혁신 확산의 공간 상호의존성 등을 다룬다. 7장에서는 6장에서 도출된 신공급 측면의 성장 전략에 대해서 논의한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 귀한 논평을 해주신 경제학부의 류덕현 교수, 고선 교수, 정혁 교수, 그리고 황우택 전 특허심판원장에게 감사를 표한다. 책 출판을 기꺼이 허락해 주신 박기남 사장님, 박정헌 상무님, 방조일 편집장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항상 옆에서 격려해 주는 가족, 모든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하고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I do not mention that you owe me. You will do even more than I say” 말씀하시는 분께도 감사드린다.
2022년 10월
독서당로 매봉산 자락에서
김지욱
1장 성장 논쟁 : 성장론의 일반적 인식
2장 성장과 발전의 통합적 이해
3장 성장이론의 발전
4장 수렴성 논쟁 : 수렴과 발산
5장 펜 월드 테이블에서 바라본 한국 경제
6장 성장의 재역설 : 신공급 측면의 성장론
7장 신공급 측면의 성장 전략 :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